지난 1편에 이어 동무 이제마의 생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다음의 내용은 지난 1편에서 이어지므로 읽지 않았다면 이제마의 생애 1편을 읽은 뒤 이번 편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이번 편에서는 어린 동무 이제마의 성장과정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이제마 평전에 따르면 이제마의 나이 13세 때 병이 있었던 아버지 이반오가 38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이제마의 할아버지인 이충원도 아들인 이반오가 떠난 이후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곧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해 이제마 평전에서는 이충원이 아들 이반오가 사망한 후 가슴 속의 화병이 심해져 건강이 악화됐다고 했다. 그리고 4년 후, 이제마에게 학문을 가르쳐주었던 큰아버지 이반린도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아버지, 항상 자신을 응원해주던 할아버지, 학문을 가르쳐준 큰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어린 이제마가 받은 충격은 컸을 것이다.
가족의 죽음은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의학에 큰 영향을 미친 상한론(傷寒論)의 저자 장중경(張仲景)은 상한론을 저술하게 된 계기가 자신의 일가가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기록했다.
이제마 역시 아버지, 할아버지, 큰아버지의 죽음은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특히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의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이제마는 결혼을 한다. 이제마 평전에 따르면 이제마의 아내는 소음인의 체질을 가졌으며, 임신 중 입덧이 심한 상태에서 할머니의 장례를 치렀고 출산을 한 후 몸이 크게 쇠약해졌으며 특히 땀을 과다하게 흘렸다고 했다.
소음인에게 과도한 땀의 배출은 몸의 면역력을 저하시켜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당시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하여 약 40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제마의 아내도 이 전염병에 감염돼 22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또한 이제마 자신도 열격반위(噎膈反胃)라는 질환을 앓게 됐는데 주변인의 죽음과 전염병의 창궐, 오랜 지병 등의 환경이 이제마가 의학 연구에 몰두하게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마가 자신의 저서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본인의 지병인 열격반위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태양인(太陽人)의 체질을 가지고 태어난 나는 일찍부터 이 병을 앓은 적이 있었다. 6~7년 간 구역질이 나고 입에서 끈끈한 침이나 진액을 토하였으나 수십 년을 섭생한 다음에야 다행히 요절을 면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여 태양인으로 이병을 앓는 사람이 있다면 경계가 되도록 하는 바이다. 열격증의 치료법은 급히 화를 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제마는 오랫동안 이 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알아보고 치료하기 위해서 꾸준히 의학 공부를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동의수세보원에서 그가 일생동안 연구한 열격반위에 대한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열(噎)은 물은 먹을 수 있으나 음식물을 삼킬 수 없는 것이고, 격(膈)은 음식물을 먹어도 내려가지 않고 조금 있다가 다시 토하는 것이며, 반위(反胃)는 아침에 먹을 것을 저녁에 토하고 저녁에 먹은 것을 아침에 토하는 것을 말한다.
즉 열격반위는 음식물을 토하는 질환이며 특이하게도 복통, 장명, 이질, 설사 등의 증상이 없는 태양인의 질환이다. 이제마는 태양인의 질병에 대해서는 기존의 의학에서 다룬 적이 없었음을 동의수세보원에서 이야기했다. 즉 기존의 의학으로는 자신의 질병을 치료할 수 없었으며 자신이 연구한 방법으로 이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음식과 생활습관을 조절하고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상의 내용을 살펴봤을 때, 이제마에게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결혼 후 아내의 질병과 사망, 그리고 자신의 오랜 질병 등은 그가 의학에 매진한 계기가 됐으며 동시에 기존 의학이 지닌 한계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의학을 창시하게 되는 배경이 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어서 다음 3편에서는 동무 이제마의 청년기 이후의 생애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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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덕진 덕진한방사상체질과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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