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샘´s Diary] 특수학교 보건샘 무섭지 않아요!

특수학교 보건교사로 출근하는 첫날, 설렘보다는 솔직히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보건교사로 이미 15년 정도 근무했지만 마치 첫 학교에 처음 발령 받는 기분이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는 의사소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과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갑작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지? 내가 대처를 잘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불안감으로 조심스럽게 학교로 향했다.

▲ 권오윤 서울도솔학교 보건교사


처음 도착한 보건실에서 과거에 있었던 응급상황들을 적어놓은 파일과 보건일지를 뒤적여보면서 나의 막연했던 두려움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괜찮아.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다칠 수도 있어. 잘 대처하자. 모르는 것은 공부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특수학교 학생들은 각자 장애 판정을 받고 입학한다. 학생들은 입학 전에 지적 장애, 정서 장애, 뇌 병변 장애 등등의 진단을 받는다. 따라서 저마다 가진 건강 문제, 인지 수준이 다르고 개개인의 학습 수준도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교육과정과 배려가 필요한 학생들이 모여 있다.


어려서부터 병원생활(입원, 각종 검사, 치료 등)을 경험한 친구들이 많아서일까? 보건실에 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많았다.


흰옷 때문인지, 자신에게 주어질 처치가 아플 것 같아서인지 보건실에 들어오기 무서워하며 소리 지르고, 거부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아! 이 친구들을 어떻게 보건실에 오도록 할까?’ 그래서 거창하진 않지만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먼저 평상시에 보건샘이 절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학생들과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안녕~?”이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며 눈을 마주치려 애썼다.


그리고, 보건실에 들어오지 않겠다며 무서워하며 몸부림치는 학생은 복도에 그냥 주저앉아 처치해 주기도 하였고, 다쳤지만 보건실이 무서워 교실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학생은 교실로 직접 가서 처치를 해 주기도 하였다. 또 처치하는 중인 팔이나 다리를 갑자기 빼버리는 친구들에게는 핀셋이나 면봉 닿는 것을 무서운 것인지 물어보고, “그럼 선생님 손으로 치료해볼까?~”라고 말하며 소독 장갑을 낀 채로 손으로 소독솜이나 거즈를 잡고 처치 해 주기도 하였다. 솜 닿는 것도 싫어하는 학생에게는 분사하는 소독약으로 가볍게 분사해서 “괜찮지? 안 따갑지?” “이제 묻은 거 닦아줄게”라고 계속 설명해 주면서 처치를 하였다.


어떤 때는 다친 아이 대신 내 팔에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은 적도 있다. 안전하고 참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 하나로 안 되면 담임선생님 팔이며 다리에 온갖 처치를 한다. 아이들이 안 듣고 안 보는 것 같고 어떤 때는 거의 반응도 없지만 그래도 이런 경험들이 아이들에게 쌓이면 언젠가는 나에게 자신의 다친 부위를 내어주겠지 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이번엔 이렇게 무서워하고 거부해도 다음에는 덜 무서워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특수학교의 특성상 언어적 의사소통보단 눈빛과 몸짓만 보고 필요와 요구를 이해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기는 하지만, 학생들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나를 믿고 좋아해 주는 마음을 느끼면서 내 속에 있던 두려운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이심전심이었던가?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보건실을 무서워하지 않는 학생들이 드디어 생기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흰옷을 입은 나(흰옷을 입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아프거나 다치면 보건선생님을 찾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이러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병원에 가는 것도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지면서 말이다)를 보면서도 반갑게 인사해 주고, 웃어주고, 손 흔들어 주면서 친근감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로 표현을 못 하는 친구지만 치료가 끝난 후 보건실을 나갈 때면, “에~”하면서 손을 배에 올리고 허리를 숙이며 곱게 인사를 해 준다. 등교할 때 열화상 카메라로 체온을 측정할 때는 마스크로 가려져 입은 볼 수 없지만 배시시 눈웃음을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나에게 손을 뻗는다. 그럼 눈을 마주치며 웃으며 “○○아 안녕~?” 하고 인사를 해 주면서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받는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할 때면, 이 엄청난 좋은 에너지가 하루 종일 보건실에 가득하다.


보건실 앞 복도를 지날 때에도 창 너머로 나와 눈이 마주치길 바라고,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지나간다. 자신을 아프게 할 것 같아 보건샘을 거부했던 아이들과 ‘우리 오늘부터 1일~~’ .. 이런 기분을 갖게 해주는 아이들이 한 명 두 명씩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다른 여느 학교와도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다정다감하고 진심이 느껴질 때가 많다.


▲ 학생의 마음이 담뿍 담긴 카네이션과 편지. 아쉽게도 우리 학생이 아직 한글을 다 떼지는 못했다.

얼마 전 등교수업 주간에 한 다운증후군 학생이 배시시 웃으며 혼자 보건실을 찾아왔다. 보통은 담임선생님과 함께 다니는데 이날은 무슨 일인지 혼자 온 것이다.


“□□아, 어디 아파서 왔어?”라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미소를 지으며 학생이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손에는 조심스럽게 접은 카네이션꽃과 편지가 들려 있었다. “어머~ 이거 선생님 주려고 가지고 온 거야?” 라고 묻자 “어!”라고 짧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반말이 아니다. 이 친구가 낼 수 있는 “네”라는 의미의 말이다.)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수업 시간에 배운 꽃 접기 작품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를 기억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주는 감성적인 아이였구나 하는 - 더욱이 이 아이가 이걸 만들면서 나를 생각해 줬다는 고마움이 나를 감동 시킨 것이다.

사랑을 받는 느낌은 학생에게도 소중한 것이겠지만, 교사인 나에게도 무척 소중한 것이었다.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생활하는 특수학교여서 우선 겁이 났고, 하루하루 큰일이 나지는 않을까 불안함이 가득하지만,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실상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받는 사랑으로 나 자신이 힐링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3월이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조금 더 특별한 나의 아이들과의 새 학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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