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월은 성형외과의 비수기다.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나기 마련이다. 물론 그 시간에 학문을 위해서 책을 들춰보기로 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책을 뒤척거리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는 건 막을 수 없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은 비대면, 자가격리, 마스크, 셧다운 등등이다. 자연스레 걱정이 되면서 앞으로 사회에서 대면활동이 얼마나 위축될 것인가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환자가 많지도 않은데? 코로나 걸리기 힘든데? 누가 알아주나. 나도 저녁 약속을 다 취소했는데 말이다. 의사는 환자를 보지 않고 진료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나는 수술을 하는 성형외과 의사다! 좋을 리가 있겠나? 하지만 거짓말 같게도 계속 안 좋은 건 아니었다. 봄에는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생각보다 환자가 있었다. 그 이유는 마스크를 써서 최대한 수술한 것을 감출 수가 있었고 재택 근무로 인하여 이 기회에 수술을 하자는 수요가 발생 하였기 때문이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얼마나 지속 되었을까? 역시나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 하강 국면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러다가 꽃도 못 피우는 거 아닌가?
문득 아 … 비대면이 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비대면이 뭐가 있을까? 주식, 부동산? 전혀 모르는데? 자본금이나 있냐? 정말 비대면이 오래가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겠구나 음 …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다가 경과 환자가 방문을 하였다. 원장님 왼쪽 눈이 더 멍들고 무거워요. 뭐가 잘못된 거 아닌가요? 아 … 나에게는 아직 환자가 있구나. 아 네 누구누구님 아직은 수술한 지 1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반적인 증상이지만 환자에게는 평생 한 번 겪어보는 극도의 무서운 증상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에게는 낡은 12척의 배가 있으니 133척의 배가 두렵지 않습니다 라는 명언이 기억이 나면서 나에게는 하루에 몇 분의 환자가 있으니 코로나에 맞서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진료 하겠습니다 라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문득 딴 생각에 잠기어 내 앞에 소중한 환자들과 가족들을 잊은 건 아닌 지 반성을 해본다. 필자가 중학교 때 한창 책을 좀 읽던 시절에 어느 날 저녁 먹으라고 얘기해주시는 부모님께 ‘학생이 공부를 제대로 안 했으니 오늘은 밥을 먹을 필요도 없다’라고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나름 정의(?)롭고 염치가 있었던 시기 같다. 물론 꼭 지금 안 그렇단 얘긴 아니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제대로 잘 하고 있나? 코로나 탓하고 남 탓 하지는 않았나? 사실 할 줄 아는 다른 일도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의사밖에 할 일이 없다. 아직 환자가 있으니까 당연히 할 일은 수술이다. 환자가 수술 후에 원장님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이 세상 최고의 피로회복제이다. 아마 아직도 내가 할 일이 무궁무진 할 것이다.
환자가 아직 만족해하고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를 들을 수 있는 의사면 아직 왕성히 활동해도 되지 않을까? 당분간은 손을 전혀 떨지 않고 수술도 너무 좋아하니까 앞으로 20년 간은 전혀 문제 없을 것 같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서 수술 하고 직원들 얘기 들어주고 방문자 있을 때마다 매번 소독하고 손씻고 저녁 모임 모두 취소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는 중이다. 곧 이겨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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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호 아이호 성형외과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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