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가 된다는 것은... [어느 코로나19 확진자의 이야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한창이던 지난 해 12월  10일, A씨(25)는 확진판정을 받았다.


확진판정 뒤 격리 대상이 되고 입원 치료를,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 온… 아니 돌아 갈 그 날까지 A씨가 겪은 19일 간의 이야기. <한국건강신문>이 A씨의 시점으로 정리했다.


▲“갑자기 어지러운 아침, 그저 몸살인 줄로만 알았다”

9일 아침 눈을 떴는데 눈앞이 핑 돌며 어지러웠다.


병원 일이 바빠 3일 연속 잠을 못 잤더니 으슬으슬 추운 기운이 올라오는 듯하다. 오후가 되도록 이상한 어지럼증은 그치지 않고 하루 종일 몸살 같이 나를 쫓아다녔다. 아무래도 확증자가 폭증하는 시기인 만큼 가벼운 몸살 기운 같아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확진된다면... 정말 상상하기 끔찍한 가정이다.

그래도 항상 밖에 나갈 때는 KF94 마스크를 벗지도 않고 혼밥은 커녕 매번 포장까지 오던 생활을 이어왔으니 설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10일 아침에도 코가 붓고 오한이 드는 것이 여전했다. 어젯밤부터 미열과 인후통이 있어 팜피린을 먹고 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조퇴하고 아래층에 들러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체온부터 재자는 생각에 길을 물어보니 체온측정기기가 응급실에 있다고 해서 돌아 나왔다. 검체를 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앉으니 공기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만약 내가 정말 확진이면 누가 나를 돌봐줄까.

잠깐 눈을 부치고 있다가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000님, 양성입니다” 자다가 찬물 세례를 받은 것 같았다. “저기요....” 혹시 음성을 잘못 말한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재차 확인을 해봐도 나는 분명 양성 확진이었다. 말귀를 못 알아들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뉴스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할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관리를 했기에 확진이 됐나 싶었다. 그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확진자 양성 판정을 받는 순간부터 생활치료센터 퇴소까지...

생각을 붙잡을 틈도 없이 지자체 이동담당관, 역학조사관, 방역담당자들의 전화가 밀려왔다. 그리고 이 담당자들은 내가 접촉했던 주변인, 가족들에게 나의 확진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그들의 동선을 조사하고 상태 점검에 들어간다. 한 순간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화제(?)의 인물로 등극 됐다.

3일차가 되도록 자가격리만 할 뿐 감감무소식이다. 인후통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편도와 코 안쪽이 부어있다. 코 안이 먹먹하고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것 같다. 핸드폰으로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데 가끔 무섭게도 94~ 95% 측정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97~99% 안으로 잡힌다.

이날 오후 5시 25분, 드디어 생활치료센터로 입소하라는 소식이 왔다. 지난 3일간 팜피린 4병으로 버텼다. 근육통 때문에 아세트아미노펜(팜피린 주성분)을 찾았지만 여전히 심신이 고단했다. 이제야 누군가 도와준다고 생각하니 인류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헤아려보게 된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시큰거리고 뻐근하다. 이쯤 되니 미각은 좀 남아 있지만 후각은 제 기능을 잃은 것 같았다. 평소 후각이 민감한 편인데 커피 잔을 들고도 향을 맡지 못해서 코를 대고 킁킁 맡아야 비로소 커피향을 느낄 수 있다.

룸메와 시간을 보내다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분류를 살펴봤다. WHO에서는 S,V,G그룹 기타에서는 GH, GR 그룹을 추가해 세분화 했다. 나는 이 중 어떤 유형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까. 청소할 때 바닥에 머리카락이 유독 많다. 탈모인가? 덜컥 겁이 났다.

입소하고 며칠이 지났다. 확진된 지 열흘째다. 후각을 잃어도 격리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리워지는 것은 바깥 내음이다. 창문을 열고 바깥 냄새를 맡아봤다. 며칠이 지나 상태가 나아졌는지 미미하게 찬바람에 섞인 바깥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코 안의 붓기가 가라앉고 이제는 후각도 조금은 돌아온 것 같다. 집중해서 음식을 꼭꼭 씹으면 음식 맛도 느낄 수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증상에 혹시나 병원에 민폐를 끼칠까 우려돼 설마하며 받았던 검사가 내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을 줄이야.

이제 퇴소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의외로 후유증은 없는 듯하다. 누군가는 숨만 들여 마셔도 기침을 한다는 데 기침 한번 없었고, 엑스레이 결과도 깨끗했다. 다만 몸에 작은 이상만 느껴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의심하는 노이로제 같은 피로감은 느낀다.



▲ 후각이 무뎌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코로나 확진자'라는 시선

하지만 코로나 19의 진짜 후유증은 다른 데 있었다. 내가 병원으로 돌아가자 이미 내가 확진자라는 것이 실명으로 주변에 퍼진 상태였다. 내가 확진자였다고 말하면 “아 그 때 그”란 수식어가 앞에 붙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친척한테 감염됐다며?”라고 뚱딴지 같은 안부를 묻기도 했다. 내 주변에 감염자는 물론 접촉했던 사람도 없었기에 동선을 분석해봐도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여전히 나의 감염경로는 불명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취도 없이 나를 감염시켰다.

코로나 19로 격리생활을 하면서 인후통에 고생스럽거나 몸에 남을 후유증이 걱정돼서 괴로운 게 아니었다. 그보다 나를 외롭게 했던 것은 왜 내가 걸렸을까, 그리고 내 주변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을까란 ‘죄책감’과 나에게 거리를 두고 훌쩍 떨어져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었다.

내가 몹쓸 병에 걸린 마냥 폐기용품이 소각용 상자에 담길 때, 코 푼 휴지에 피가 묻어 나올 때도 그저 담담했다. 그러나 내가 친하다고 느꼈던 사람이 흔한 카톡 하나 보내오지 않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걔 코로나 걸렸대”라는 말이 도는 것을 들었을 때, 너랑 접촉했는데 나는 어쩌냐고 물어올 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친구들끼리 홈파티를 한다는 이야기가 멀리서 들려올 때, 일정 내 주변에 무언가 정리되고 삭제된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출입하는 곳이 병원이다보니 일회용 마스크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소독해서 처리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하루 아침에 확진자가 돼 버렸다. 그 바람에 나는 누군가에게는 한낱 이야깃거리로 치부됐다. 때로 생각지도 못한 주변인이 안부를 물어오기도 해서 반갑기도 하지만 2주 동안 철저히 격리생활을 한 나로서 조언을 앞세운 지나친 관심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코로나 확진을 통해 새삼 깨닫는 것은 한국 사회에는 개인 사생활이 존중 받는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격리 생활 이후에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 확진자'라는 꼬리표는 계속 따라다녔다. 누군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확진자가 되어보니 영문도 모른 채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참 버겁게 느껴졌다. 감염경로라도 명확히 알 수 있었다면 나 혼자 걸렸다는 고립감에서 허우적거리진 않았을 것 같다.

지금도 사회는 여전히 코로나 19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 주변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조심해야겠다'는 반응보다 ‘누가 코로나에 걸린 거래?’라는 질문이 먼저 튀어나온다. 코로나란 망령이 떠도는 사회에 내가 확진자가 될까 또는 내 주변인이 확진자일까 우리 모두는 불안에 떨고 있다. 내가 확진자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한 때 내가 구설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 속상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한다. 하루 빨리 이 후유증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저작권자 ⓒ 한국건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