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미국 네바다주 한 지역병원에 2년 8개월 된 여아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 이미 사망한 아이의 사인은 둔력에 의한 복부 손상. 부검결과는 참혹했다. 복막에는 광범위한 출혈이 있었고 간은 파열돼 갈라지고 췌장도 찢어졌다.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온 보호자(27세 남성)는 지하실로 연결된 6칸 콘크리트 계단 밑에서 아이가 의식 없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응급전화 상담원이 요청하지도 않았음에도 이 남자는 아이에게 CPR(심폐소생술)을 했다고 진술했다.
단순한 사고로 묻힐 뻔했지만 몇 주 후 아이의 보호자는 유죄를 선고 받고 종신형에 처하게 됐다. 가해자는 사망한 여아를 가슴과 복부를 두 주먹으로 마구 때린 사실을 인정했다. 덧붙여 그는 계단에 굴러 떨어진 사고로 보이기 위해 의식 없는 아이를 지하실 계단으로 옮겨놨다고 털어놨다.
이 유아의 사망을 두고 고의적인 살인임을 입증하는 데에는 담당 부검의의 소견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부검의가 내린 결론의 핵심은 췌장 손상은 복부 깊숙이 있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이나 자연추락과는 연관 관계 없다는 것.
부검의였던 미국 워쇼 카운티 지역 검진소(Washoe County Regional Medical Examiner’s office)의 캐서린 캘러한(Katherine Callahan)박사는 췌장이 손상됐다면 아동학대에서 발생한 부상의 정도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라고 설명했다. 캘러한 박사에 따르면 “복막의 위치로 봤을 때 척추에 밀착된 췌장이 손상되려면 복부에 상당한 외력이 가해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5세 미만 어린이의 췌장이 찢어졌다면 이는 학대를 의심할만한 치명적인 표시이며, 이는 추락하는 사고나 심폐소생술로 인한 부상과 같은 우연한 사고와 구별된다. 췌장이 손상되려면 의도적인 외력이 가해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자동차 사고나 심한 발길질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전한다.
최근 검찰에 16개월 여아(정인이)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관해 의견서를 제출한 대한소아청소년학회 임현택 회장은 위 사건의 부검 내용을 포함해 "부검의 결과를 보았을 때 발로 밟는 정도의 둔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정인이의 사건에도 비슷한 판단이 나왔다. 정인의 부검 결과에 대해 이정빈 가천대 석좌교수는 “발끝처럼 뾰족한 부분으로 때렸다면 피부에 상처가 있어야 하는데 피해자는 그런 흔적이 없었다. 뭉툭한 것으로 넓은 부위에 힘을 가해 췌장이 끊어진 것이라면 발바닥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또 법의학자들은 양모는 정인이가 사망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 22일 가슴 수술을 받아 손으로 강한 물리력을 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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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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